섬진강은 굽이굽이 흐르면서 계절에 따라 다채로운 먹을거리를 베푼다. 강굴은 그중 '봄의 숨은 별미'에 해당된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 서로 몸을 뒤척이며 잉태한 초대형 굴이다. 거진 어른 손바닥만 하니 아마도 세상에 이보다 큰 굴은 없을 듯 싶다.
섬진강 하구인 하동포구에는 요즘 강굴 채취가 한창이다. 강굴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1급 수질을 자랑하는 하동포구에서 서식하며 새봄 벚꽃이 필 무렵 그 맛이 가장 뛰어나다 하여 일명 벗굴(벚굴) 이라고 부른다.
강굴은 섬진강 물속에 있는 바위에 붙어서 산다. 조업은 3~4m 깊이의 물속에서 이루어진다. 잠수부가 장비를 갖추고 입수해 강바닥 바위에 딱 달라붙은 강굴을 떼어내는 방식이다. 강굴은 입춘전에 따기 시작해 4월 말까지 채취한다.
섬진강에서만 나는 강굴은 그 크기가 무려 30cm나 되며 알은 쌀뜨물처럼 뽀얗다.
마을 주민들은 강굴을 물속에 사는 비아그라, 살아있는 보약이라고 부른다. 일반 굴보다 영양가도 3~4배나 높고 강굴을 먹으면 힘이 넘치기 때문이란다. 보통 참굴의 30배에 이르는 초대형 굴, 그 크기에 한 번 놀라고 짠맛이 없이 담백하고 시원한 맛에 두 번 놀란다.
"바닷물하고 민물하고 접하기 때문에 먹으면 짜지도 않고 일부러 간을 하지 않아도 입에 딱 맞는다."
강굴을 하동에서는 벚굴, 벅굴, 벗굴로 불리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벚꽃이 피는 시기에 먹는 굴이라 해 벚굴로 이를 붙였으나 민족심의 발로로 지역민들이 'ㅈ'받침을 'ㅅ'또는 'ㄱ'의 받침으로 바꾸어 표기해 온 것이란다.
벗굴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에 산다. 섬진강 하구는 간만의 차이가 커서 바닷물이 강 쪽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기수역에서 자란 탓에 강굴은 단맛과 짠맛이 뒤섞여 있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기운이 풍긴다. 바다에서 나는 참굴과 비교하면 비릿한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강굴도 수확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섬진강의 숨은 별미도 계속 먹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
생태계에 변화가 생겨 강굴의 수확량이 해마다 줄어들어 강굴이 섬진강의 희귀종이 될 수도 있다. 강굴이 우리 세대,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또 하나의 보물이 될지도 모를일이다.
하동포구는 해마다 우수를 전후해 벗굴을 맛보러 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섬진강의 새봄을 들이마시며 강굴을 먹기 위해 천릿길을 달려온 이들도 많다.
강굴은 껍데기가 두꺼워 여는 일이 만만치 않다. 우선 칼등으로 둥근 가장자리를 깨뜨려 칼날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껍데기 안으로 칼을 밀어 넣어 빙 돌려가며 틈을 벌린다.
껍데기가 열리면 우윳빛을 띤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굴인지 대합 조개인지 모를 만큼 살덩이가 커다란 굴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강굴은 기호에 따라 마늘, 고추, 묵은지 등을 곁들이거나 초장에 찍어먹는다. 물론 순수한 맛을 느끼려면 아무런 양념 없이 먹어야 한다.
물컹거리는 차가운 살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면 충만함이 밀려온다. 입 안 가득 강굴 특유의 향이 감도는데 잊지 못할 뛰어난 감칠맛이다.
강굴을 먹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구이를 비롯해 강굴 죽, 강굴튀김, 강굴 전, 강굴 찜 등 취향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구이를 가장 즐겨먹는다.